🖼️ 청소부 화가, 헨리 다거 – 잊힌 방 안의 우주
헨리 다거(Henry Darger).
세상은 그를 ‘청소부 화가’라고 부른다.
생전에 누구도 그의 그림을 본 적이 없고, 그는 전시회에 초대된 적도 없었다.
그가 남긴 수천 장의 그림과 수만 페이지의 자필 소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발견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괴짜’, ‘은둔자’, ‘아웃사이더 예술가’라 부르지만,
나는 그를 “기억되지 못한 순수한 창조자”, 그리고 “말 없는 시인”으로 기억하고 싶다.
👦 외로운 어린 시절, 그러나 영특했던 아이
다거는 1892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아버지에게 글을 배웠다.
영특했던 헨리는 1학년을 다니다가 3학년으로 월반할 정도로 두각을 보였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으로 보면 틱 장애에 가까운 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결국 그는 학교에 오래 다니지 못했다.
어머니는 여동생을 낳다가 사망했고,
막 태어난 여동생은 곧바로 다른 가정에 입양되었다.
다거는 어린 시절 하나님께 여동생과 함께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 기도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병원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고,
결국 헨리 다거는 '시설에 버려진 소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실제로 아버지는 헨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할 만큼 건강이 악화되어 더는 함께 살 수 없었던 것이다.
다거의 아버지는 온화하고 다정한 인물이었던것 같다.
📚 그의 방 안에는 우주가 있었다
다거는 평생 청소부로 일했다.
낮에는 조용히 병원에서 바닥을 닦고,
밤에는 자신의 방에서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세계를 창조했다.
그가 시설로 들어간 후, 집주인은 그의 방을 정리하다가
놀라운 작품들을 발견한다.
A4 용지 수만 장 분량의 자필 소설
수백 장의 삽화
스크랩북
콜라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환상적 세계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The Story of the Vivian Girls》라는
19,000페이지에 달하는 서사.
이야기 속에는 전쟁과 고문, 구원과 희망, 순수한 소녀들의 반란이 공존한다.
하지만 그 세계는 언제나 완결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싸움, 반복되는 희생, 구원 없는 구원자들…
그림 속 인물은 주로 여자아이들인데, 이들은 대부분
남성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는 형태로 묘사된다.
여기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나는 그것이
다거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아니라,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를 입양하고 싶어했던’ 절절한 열망의 상징이라 본다.
그는 실제로 여자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 좌절은 그의 상상 속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 그의 삶은 순수했고, 슬펐고, 닫혀 있었다
노년의 헨리 다거는 자신의 건강이 나빠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시력도 급격히 나빠져 더이상 그림을 그릴수 없게 되었다.
집주인에게 스스로 시설을 알아봐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결국 입소한 그 시설은 그의 아버지가 지내다 생을 마감한 바로 그 장소였다.
그는 그곳에서 입소한 지 4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뒤, 세상은 비로소 그의 존재를 주목했다.
그의 방, 그의 종이들, 그의 낙서,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우주를.
✍️ 나의 단상
헨리 다거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말로 쉽게 요약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상을 받은 적도 없고,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누군가는 그의 세계를 병리적으로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위대한 창조로 추앙한다.
하지만 내게 그는 단지
**“사랑받지 못한 이가 자신을 지우기 위해 만든 이야기의 세계”**로 느껴진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이 줄 수 없던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든 사람으로 기억된다.
나는 아직 그의 자서전 전체를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꼭, 그가 직접 쓴 그 문장들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그의 자서전에는 이런 글이 있다.
“Unlike most children, I hated to see the day come when I will be grown up. I never wanted to. I wished to be young always. I am grown up now and an old lame man, damn it.”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어른이 되는 날이 오는 게 싫었다.
나는 결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어린이로 남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른이 되어, 늙고 다리도 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젠장.”